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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어떤 책을 발제할까 고민하다가

 

예전부터 읽고싶었던 멋진 신세계가 마침 눈에 들어왔다.

 

코로나 사태로 어지러운 분위기에 디스토피아 소설이 딱이지 

 

책 표지에 적혀있는 추천의 글을 읽어보면

 

'기계문명의 발달과 과학의 진보가 전체주의 사상과 밀착될 때 어떤 인간적인 비극이 초래될 수 있는가를' 묘사한 작품이라고 되어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묘하게 설득되었다.

 

'어... 이 제도 괜찮은데?'

 

'어... 이런 기술 완전 좋을 것 같은데?'

 

분명 작가는 인간적인 비극을 위해 쓴 글이겠지만

 

2020년의 우리에게는 묘하게 실현 가능한 현실이기에 더욱 몰입해서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책을 다 읽고 나서의 결론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것은 결국 깊이있는 관계, 애정어린 관계' 라는 것이다.

 

그게 꼭 남녀 사이일 필요는 없다. 우정이든, 가족이든 사랑이든.

 

이 사실을 계속 상기하면서 읽어야지, 까딱 잘못하면 과학 문명에 묘하게 설득될 수 있는 위험한 책이다 ㅋㅋㅋㅋ

 

그렇기에 아직까지도 많이 읽히고 회자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히 써본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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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이 세계는 계급이 나눠져있다.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 계급까지. 계급에 따라 신체적으로 유전적으로 차이가 난다. 신체적으로는 계급이 높을수록 키와 덩치가 커진다. 유전적으로는 계급이 높으면 하나하나의 개체가 되고, 계급이 낮을 수록 일란성 쌍둥이들로 이루어져있다. 최소한의 난자와 정자로 최대한의 인간을 만들어내는 효율의 극치이다. 당연히, 계급에 따라 하는 일도 달라진다.

 

전통적인 계급사회와 다른 점이라면 각 계급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위치에 만족한다는 것이다. 낮은 계급의 사람들이 아무리 열악한 환경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살아도, 그 자체에 만족하고 행복감을 느낀 다. 그리고 다른 계급이 되고자 하는 열망 자체도 없다. '나는 알파나 감마가 아니라서 다행이야' 이렇게 생각하며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이런 자세는 자발적인 것이 아니다. 지배 계급들은 출산 과정과 양육 과정을 통제하고, 유아기때부터 반복된 세뇌학습, 행동반사 훈련을 통해 각 계급에 알맞는 사람으로 성장시키기 때문이다.

 

어느 사회에나 돌연변이는 있다.

여기 알파계급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보다 신체적으로 왜소한 주인공 버나드가 있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 소외당하고, 여자들에게 은근히 거절당하고, 동료들도 그를 조금씩 무시하며 뒤에서 '혹시 성장 호르몬 대신 알콜이 들어간 건 아닐까' 라는 의심을 받게 된다. 

 

그가 속한 사회에서 소외당하는 버나드는 눈길을 돌려 자신이 속한 문명사회보다 아래에 있는 야만인의 사회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래서 그는 그의 상사 토마킨에게 허락을 받고 레니나와 함께 야만인 구역으로 휴가를 떠나게 된다. 

 

거기에서 그는 토마킨의 옛 연인이자, 야만구역으로 떨어져 실종되었던 문명인 린다를 만나게 된다. 린다는 실종되었을 당시 자신의 상사인 토마킨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고, 그래서 야만인 구역에서 아들을 낳아 기르며 세월을 보내게 된다. 버나드는 이 사실을 알고 놀라며 린다와 존을 문명인 구역으로 다시 데려오게 된다.

 

문명 사회에서는 사람을 만들어내는 일을 철저하게 국가에서 관리하고 있었고, 더 이상 여성은 직접 출산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출산과 육아가 여성과 완전히 분리된 사회인 것이다. 분리되다 못해, 직접 출산하는 일은 매우 음란하고 저속한 일처럼 취급받는다.

 

헬리콥터에서 내린 린다가 모두의 앞에서 토마킨을 부르며 당신의 아이를 낳았다고 하자, 모두들 얼굴을 붉히며 자신이 모욕받은 양 어쩔 줄 몰라한다. 옆에 있던 존이 무릎을 꿇고 인사하며 토마킨을 '아버지'라고 진지하게 부르자, 모두들 그 광경에 웃음을 터트린다. '아버지'가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토마킨은 조롱이 대상이 되어 좌천되었다.

 

반대로 버나드는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된다. 문명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혼혈인'인 존을 보고싶어했고, 버나드와 친분을 쌓아야 존을 볼 수 있었기에 모두들 그와 어울리길 바랬다. 버나드는 자신에게 관심이 쏟아지자 그동안 가지고 있던 열등감이 조금 해소된 듯 했고, 존의 기세를 등에 업어 우쭐해있었다. 

 

그 와중에 존은 문명사회에 대해 배워갈수록 문명사회에 대해 혐오감을 갖게 되었다. 헌신하는 관계가 아닌 잠깐의 불장난 같은 관계를 더 찬양하는 사회. 늙지 않는 사회. 대량의 일란성 쌍둥이를 노예처럼 부리는 사회. 예수와 석가모니와 셰익스피어는 존재하지 않는 사회. 소마라는 마약을 먹고 즐거워하며 촉감영화로 욕정을 충족시키고, 슬픔과 고통을 지워버려 끝내는 죽음마저 긍정적으로 만든 사회. 자신의 어머니인 린다가 죽었지만, 아무도 눈물 흘리지 않는 사회에 대해 끔찍히 여긴다. 문명인들은 죽음을 슬퍼하는 그를 오히려 이상한 사람으로 여겼다. 

 

그래서 존은 문명사회가 주는 것들을 거부한다. 배급되는 소마 '독약'이라 칭하고 그것을 버리며 당신들에게 자유를 줄 것이라고 말한다.  레니나에게 애정을 느끼지만 정신적 관계를 맺을 줄 모르고 신체적 관계를 맺길 바라는 레니나에게 '매춘부'라고 이야기하며 거절한다. 

 

그리고 마침내 존과 존의 주변인- 버나드와 그의 친구 헬름홀츠-는 붙잡혀 총통에게 가게 된다. 총통과 그들의 대화가 작가가 정말 말하고자 하는 바를 보여주고 있다. 소설을 죽 읽고 따라오다가, 갑자기 작가가 두둥, 하고 등장한 느낌이랄까. 

 

총통은 모든 것을 알고있었다. 종교, 과학, 셰익스피어. 그리고 총통은 두 가지 중에서 문명 사회의 삶을 택했따. 그리고 그런 말을 하며 버나드와 헬름홀츠를 섬으로 전출시켜버리고, 존은 실험을 위해 문명사회에 내버려둔다. 그래서 존은 은신처를 찾아 도망치게 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의식을 행하며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그도 잠시, 촉감 영화의 감독이 그가 있는 은신처를 찾아내었고, 야만사회에서 했던 의식을 행하는 그를 촬영하여 영화로 만들어 큰 흥행을 하게 된다. 

 

마치 셀럽을 보러 가듯, 문명인들이 그를 찾아왔다. 그리고 그 중에는 레니나도 있었다. 존은 그녀를 보자 반쯤 미치광이가 되어서 자신을 내리찍던 채찍으로 그녀를 찍어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문명인들은 이 광경을 보며 서로를 때리며 존의 흉내를 내면서 돌아간다.

 

정신을 차린 존은 흐느껴 울게 되고, 시간이 지나 다시 그 은신처를 찾은 문명인은 천장에 매달린 존을 보게 된다. 

 

 

 

1. 책의 전체적인 감상은?

 

 

 

 

야만인과 문명사회를 구분짓는 가장 특징적인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출산, 고통, 혈통 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여성과 출산이 분리될 수 있다면? 이에 대한 의견은?

분리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헉슬리는 여성에게서 꼭 필요한게 출산이라고 생각해서 출산과 모성애를 지운 사회를 그린걸까.

위에서 말한 것 처럼, 우리는 이런 사회를 꿈꿀 수 있게 되었고

책에서와는 달리 출산과 여성이 분리되었을때 진정한 남녀평등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상상도 해본다.

 

 

 

 

 

극단적인 선택이긴 하지만, 둘 중에 하나의 사회를 골라야한다면 어떤 곳을 고를 것인가?

책에 나오는 야만 사회를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중요할 것 같다. 책에서는 야만의 사회가 고대사회, 부족사회와 비슷하게 그려졌다. 책에서 그린 야만 사회가 현재 우리 사회와 같다면 어땠을까. 잠시 생각해보았는데, 나는 그래도 문명 사회를 택할 것 같다...ㅎ

 

 

 

 

 

p. 342 지겹기는 커녕 그들은 일을 좋아한단 말일세. 작업을 끝내면 소마가 배급되고 게임이 있고 무제한의 성희와 촉감영화를 즐길 수 있단 말일세. 그들에게 더 이상 바랄 것이 뭐가 있나?
정말 우리의 삶을 한번 되돌아봅시다. 열심히 일하고 연애하고 문화생활을 즐기고... 이것 말고 더 필요한게 있나요? 필요한게 있다면 무엇인지, 없다면 왜 책 속의 사회는 디스토피아가 된 것인지

사실 이 문장을 보고 좀 띵했다. 뭐가 더 필요할까.

책 속의 사회와 지금의 우리가 다른 점은 자유라는 것이다.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졌다면 이들은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다. 버나드만 봐도, 총통에게 자유롭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없다. 그리고 사회에 반하는 말을 하면 아이슬란드로 유배를 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저들이 행복을 느끼더라도 직접 자유롭게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공허해보이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시간이었다.

그 자유에 어느정도까지 나의 의지가 들어가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지..

어쩌면 우리는 미디어에 의해 세뇌교육을 받고 있는 줄도 모르면서 세뇌 교육을 받은 상태인지도 모른다.

 

 

 

 

 

 

과학 기술이 이대로 쭉 발전한다면 멋진 신세계같은 사회가 될까?

인문학이 있는한, 그럴 가능성은 적을 것 같다. 

과학기술의 장점을 인간을 위해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위해 잘 사용할 수 있도록 인문학이 길을 안내해줄 것이라는 희망으로 책을 덮는다